팬덤 정치의 한계 (=개년의 한계)

오래전 소녀시대가 최고 인기를 끌던 시절, 아이돌을 정말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당시 팬들은 아이돌의 신곡을 ‘스트리밍’하는 것에 열광하지 않았지만, 아이돌이 아무리 많아도 ‘팬들의 힘’만으로는 ‘트렌드’를 깰 수 없다는 걸 자주 봤다.

그런 스트리밍에 열성적으로 참여한 것도 아니고, 솔직히 팬이더라도 노래를 자주 듣는 편은 아닌데… ‘공공의.’ 좋든 싫든 좋아한다고 하고, 솔직히 마음에 안 들어도 신곡이 차트를 석권해야 한다고 하는데 대중의 선택은 무자비하다.

그냥 내 귀에 좋으면 듣는 거죠. 그래서 정치 팬덤이 열성적으로 활동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당에 가입하거나 지지해 달라고 요청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솔직히 그런 건 별 의미가 없습니다.

대중은 그 정치인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만 관심이 있다.

윤석열 정권이 아무리 힘들어도 보수주의자들은 실생활이 아니라 복수심이나 정체성에 부합하는지로 평가한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보복=윤석열. 이것이 공식입니다.

이에 비해 대다수의 유권자와 국민은 문재인 정부가 잘했느냐 못했느냐(이것이 앞으로 대안을 모색하는 중요한 문제이기는 하지만)보다는 자신의 삶,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그들의 아이들의 삶. 상황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에 집중하세요. 그런 점에서 지난 대선에서는 윤석열도 이재명도 별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서포터들의 눈에는 이재명의 공약이 1년 내내 차트 1위를 차지할 만큼 좋은 ‘음악’이었을 수도 있다.

(사실 당시 이재명을 찾아온 사람들은 반윤석 때문이었다.

-이재명 공약보다는 열 정서)가 대다수 국민의 눈에는 문재인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의 ‘문재인 정부 버전 2’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의 방향보다는 ‘수위’를 문제로 삼고 더욱 강력한 속도로 좌경화하는 것이 이재명 모델이기 때문이다.

현재 이재명 지지자들은 이슈마다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대중이 보는 이재명은 차트 밖, 차트 밖이다.

딱 그런 노래에요. 대중은 무자비하다.

그냥 팬덤이 두터운 아이돌인데 노래 실력이 그렇게 뛰어나진 않아요. 아무리 팬덤이 강해도 노래가 좋아야 인기를 얻을 수 있는데, 이재명은 팬층이 두터운 정치적 아이돌일 뿐이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일종의 ‘프랑켄슈타인’ 팬덤이기도 하다.

이재명이 그렇게 뛰어난 걸 국민이 모르는 게 아니라 지금의 이재명이 너무 나빠서 국민은 물론 당 내에서도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재명의 정치가 나쁘다(물론 윤석열의 정치가 더 나쁘다). 결국 노래가 좋아야 한다.

그가 좋은 비전을 보여주고 계속해서 좋은 정치적 행보를 보인다면, 그에게 도덕적 결함이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국민은 그를 선택할 것입니다.

. 이명박이 바로 그런 경우가 아니었나요? (물론 당시에는 과대광고로 인해 국민들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도덕적으로 선하지 않아도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능력이 너무 구식이었습니다.

) 사족: 물론, 그런 경우였습니다.

윤석열처럼 황당하지 않고 대통령이 되는 것. 그러니 소녀들이 희망에 가득 차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 사람이 대통령인데 왜 이재명이 안 되느냐. 하지만 대통령이 되는 것만큼 중요한 것만큼, 대통령이 된 이후도 중요합니다.

하향 경주가 아닌, 더 나은 비전을 가지고 경쟁하는 상향 경주를 위해서는 이재명이 바뀌어야 하고, 현재의 정치 팬덤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숫자로 반박하고 단순히 자신의 주장을 큰 소리로 외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